작은 도시에서 따로 떨어져 사시던 할아버지는 정년퇴임을 하시면서 우리 집에 함께 살러 오신다. 마중나간 역에서부터 나를 향해 활짝 웃으시던 할아버지는 집안에 작은 변화를 가져온다.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마당을 쓸고 재활용 쓰레기들을 정성스럽게 추리고 꽃과 채소들을 심으신다. 나도 그 옆에서 파씨앗을 뿌린다. 할아버지는 나를 업어도 주고, 책도 함께 읽어주고 일요일이면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나는 마냥 신나기만 하다.
그런데 바람이 씽씽 불던 겨울 날 연을 찾다가 할아버지가 소중히 아끼시는 낡은 안경을 깨고 만다. 나는 혼이 날까 봐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는데, 혼내실 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우리 강아지 깼니?"하며 따뜻하게 대해주신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가 엉겁결에 이렇게 말해버리고 만다. "이 다음에 나도 그 안경 쓰고 싶어요"라고.
이야기는 낡은 안경에 대한 자그마한 사건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이 바쁘고 모진 세상에서 나이가 들어 낡고 쓸모 없어진 것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아 마음 졸이는 손자에게 변함없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 그 굳고 긴장했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실 줄 아는 '낡음의 향기'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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