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조글 주름진 이마, 거뭇거뭇 검은 점이 있는 얼굴. “송이야.” 하고 부르는 소리는 꼭 고장 난 로봇 소리 같다. 배도 동산처럼 불룩 나왔다. 송이 할머니의 모습이다. 할머니는 송이 동생을 돌봐 주러 시골에서 올라왔다. 송이는 자꾸 말을 거는 할머니가 귀찮다. 유치원에 데리러 올 때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부스스한 할머니가 송이는 창피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와 기차를 타고 시골로 가게 된 송이는 ‘뒤로 가는 기차’라는 푯말을 단 기차에 올라탄다. 자꾸자꾸 뒤로 달리는 기차에서 할머니와 송이는 스르륵 잠이 든다. 덜커덩! 기차가 도착하는 소리에 잠에서 깬 송이 옆에는 할머니 대신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앉아 있다. 그리고 아이는 “놀라지 마. 내 이름은 오순자야.”라고 말한다. 뒤로 가는 기차가 도착한 곳은 어디일까? 송이와 오순자는 이제 어디로 갈까? 두 사람의 여행을 따라가 보자.
뒤로 가는 기차와 함께 떠나는 시간 여행
기차에서 내린 송이와 오순자는 돌다리를 건너고 마을을 지난다. 초가집이 나지막이 자리 잡고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길 한쪽으로는 정겨운 돌담이 길게 뻗어 있고, 반대쪽에서는 누런 소가 우직하게 밭을 갈고 있다. 오순자는 긴 검정 치마에 파란 무늬 윗옷을 입고 있다. 귀여운 멜빵바지를 입고 있는 송이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듯하다. 다정히 말을 건네는 동네 아주머니에게 오순자는 운동회에 놀러 오시라며 사근사근 대답한다.
오색찬란한 만국기가 나부끼는 운동장, 달리기를 하다 넘어져 무릎에 피가 송송 맺힌 송이를 오순자가 업고 힘껏 달린다. 줄다리기에서 이긴 오순자와 송이는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나무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먹던 오순자는 복동이라는 남자아이를 보며 송이에게 귓속말도 한다. 오순자의 볼이 발그스름해진다. 송이는 달리기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멋진 남자 친구도 있는 오순자가 점점 좋아진다.
『뒤로 가는 기차』에는 포근한 옛 시골 풍경, 사람들 간의 따뜻한 나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왁자지껄한 운동회 장면이 등장한다. 지금 아이들은 쉽게 보기 어려운 정겨운 모습들이다. 아이와 함께 『뒤로 가는 기차』를 보며 어려운 일은 서로 도와주고 즐거운 일은 함께 나누는 행복이 흐르던 그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자.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매력적인 그림과 이야기
동화 작가와 청소년 소설 작가로 좋은 작품을 내고 있는 박현숙 작가의 첫 그림책 『뒤로 가는 기차』는 시간 여행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따뜻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공감 갈 수 있도록 송이를 화자로 삼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옛 추억을 가득 머금고 있는 김호랑 그림작가의 그림 또한 꿈속을 보는 듯 포근한 분위기로, 할머니에 대한 송이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뒤로 가는 기차를 타고 과거로 가는 장면에서는 색다른 연출을 만날 수 있다. 자꾸자꾸 뒤로 가는 기차는 뱅글뱅글 레일을 따라 푸르스름한 환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뒤로 가는 기차가 앞으로 달려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장면도 『뒤로 가는 기차』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 기차는 파스텔 톤의 다양한 색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배경을 바탕으로 발그스름한 기적을 울리며 달린다. 앞에서 보여 준 과거로 가는 푸른 배경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인상 깊다.
손자, 손녀를 길러 주는 조부모가 많아진 요즘,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통해 조부모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부모와 조부모들은 『뒤로 가는 기차』를 보며 어린 시절로의 포근한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