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들뜬 마음이 되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곧 부엌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았다. 아이는 엄마를 외치며 달려갔다. 부엌문을 열자 아이의 얼굴로 뜨거운 김이 확 덮쳤다. 엄마가 국수를 삶으려고 물을 끓이고 있었다.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엄마는 왜 한밤중에 국수를 삶으려는 걸까? 누가 오는 걸까?2022 문학나눔 선정
2022 가온빛 추천 그림책
● 작가는 왜 백석의 《국수》를 모티브로 삼았을까?
카이스트에 수백억을 기부한 것으로 유명한 이수영 회장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나와 기부가 시작된 계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제 강점기에 컸어요. 나라 없는 슬픔을 느끼며 자랐지요. 그때 사람들은 너무 굶어서 몸이 부어 있었어요. 어머니가 음식을 하면 그 냄새를 맡고 모여들었지요. 그게 내 마음속에 싹이 되어 기부를 해요.”
이수영 회장처럼 나라 잃은 설움의 시대를 산 시인이 있습니다. 평안도에서 태어난 백석.
돌아갈 고향이 없어 떠돌아야 하는 처지였지만, 그도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누고 싶었나 봅니다. 그는 자신의 시를 쓰는 재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사람과 자연, 귀신까지도 어우러지며 소박하지만 따듯한, 정다운 삶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떠돌던 시인을 불러다가 그 좋아하던 메밀국수 한 그릇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 이 책을 기획했습니다. 백석이 누구인지 모르더라도 지치고 외로운 시인이, 나아가 혹독한 시대를 견딘 수많은 백석이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는 모습을 안쓰럽게 또 즐겁게 보아주면 좋겠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신순재 작가는 혹독한 시대를 견딘 ‘수많은 백석’에게 국수를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 이 그림책을 기획했다고 밝혔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일제 강점기에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시를 썼던 시인 백석의 마음과 같을 것입니다.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에는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지친 모든 이에게 희망과 온기를 전해 주고픈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독자는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를 통해 함께하는 가족과 정다운 이웃의 정을 되새기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되새길 것입니다.
● 그림책 장면마다 펼쳐지는 백석의 시 세계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에는 평소 보기 힘든 단어나 비유 등이 나옵니다.
‘승냥이만 한 우리 집 개’에서 승냥이는 개를 닮은 야생동물로, 과거에는 흔했으나 지금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백석의 시 《야반》에 ‘토방에 승냥이 같은 강아지가 앉은 집’이란 표현에서 등장합니다.
‘엄마는 아궁이에 자작나무를 쑤셔 넣었어’에서 표현된 자작나무는 지금은 전국에서 볼 수 있으나, 과거에는 주로 우리나라 북쪽 산간지역에서만 볼 수 있던 나무였습니다. 백석은 함경도를 여행하다가, 자작나무가 사방을 덮고 있는 풍경을 보고 시 《백화》에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외에도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 《고방》,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등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의 장면마다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를 통해 백석의 작품 세계를 더 알리기 위한 장치임과 동시에, 백석이 살았던 그 시대를 단어와 등장인물들을 통해 오롯이 느끼도록 만들고자 하는 의도된 구성입니다.
독자는 시를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 것처럼 그림책을 풀이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시가 주는 느낌처럼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의 시대적 배경과 정취를 더욱 짙게 느끼고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 천개의바람 블로그를 통해 신순재 작가님이 소개하는 그림책 장면 해설에 대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백석 시의 여운을 담아낸 그림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의 배경은 추운 겨울밤입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 외딴집 위로 새하얀 눈이 사방을 뒤덮었지요. 이런 날 엄마는 부엌에서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웁니다. 붉디붉은 불꽃이 활활 타오를수록 솥에서는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지요.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았던 걸까요? 냄새가 퍼져나갔던 걸까요? 낯선 사람들이 외딴집으로 찾아옵니다. 추위와 허기에 지친 사람들을 아이와 엄마는 반갑게 맞아 줍니다. 뜨끈한 아랫목을 내주고 편히 쉬게 해 줍니다.
사람 사이의 인정이 담긴 이야기를 오승민 작가는 특유의 색감으로 표현해 내었습니다. 차갑고 냉혹한 현실이 새하얀 눈과 잿빛 어두운 배경으로 칠해졌다면, 그 속에서 정을 나누고 희망을 바라는 사람들의 모습을 밝고 붉은 색감으로 대비시켜 놓았지요. 특히 배경을 생략하거나 최소화하며 붓질을 통한 차갑고 쓸쓸한 느낌을 극대화시켰습니다. 이는 이야기의 환상성을 높여 주고, 보는 독자로 하여금 시각적 여운을 깊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