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는 개에게 ‘보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보리는 매일 영하를 찾아와 둘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웃집 아이들은 영하와 보리가 한집에 살지 않기 때문에 보리가 ‘영하의 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후 영하는 보리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아이와 마주치게 되고, 보리는 낯선 아이와 함께 가버린다. 보리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하는 영하는 만남의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작고 연약한 세계가 가진 내밀함을
아름답고 쓸쓸하게 담은 그림책
작고 연약한 세계가 가진 내밀함을 아름답고 쓸쓸하게 담은 그림책.
남들 눈에는 불안정하고 무의미하게 보일지라도, 무엇이라 명확히 이름 붙일 수 없을지라도 더없이 소중한 관계들이 있다. 영하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작은 개와 맺는 관계가 그렇다.
영하는 개에게 ‘보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보리는 매일 영하를 찾아와 둘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웃집 아이들은 영하와 보리가 한집에 살지 않기 때문에 보리가 ‘영하의 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후 영하는 보리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아이와 마주치게 되고, 보리는 낯선 아이와 함께 가버린다. 보리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하는 영하는 만남의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작가 송미경은 영하와 보리가 영원히 이별하게 되는 결말을 그린 초고와 달리,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층의 독자들이 자신의 감정에 따라 뒷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결말을 꾸렸다. 김종민 작가는 ‘작은 개’를 실제 크기가 아닌 존재감의 크기로 표현하는 한편, 섬세한 그림과 콜라주 기법을 통해 작고 연약한 세계가 가진 아름다움을 시각화했다.
네가 어디에 있어도, 네 이름이 무엇이어도
너는 나의 개야.
우리는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어떤 관계들은 ‘가족, ’친구‘,’동료‘ 등의 이름으로 충분히 설명되지만, 아주 특별한 사이인데도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관계들도 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개와 영하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영하는 작은 개에게 ’보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보리는 매일 영하를 찾아와 둘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남들이 보기에 불안정하고, 무모하게 느껴집니다. “한집에 살지 않기 때문에 보리는 네 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웃집 아이들 때문에 영하를 고민에 빠뜨립니다. 나아가 영하는 보리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아이가 나타나자 더욱 큰 혼란에 빠집니다. 자신과 작은 개는 어떤 사이인지, 작은 개와 함께 나눈 시간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것이지요.
작가 송미경은 이 책 《영하에게는 작은 개가 있어요》를 통해 크고 명징한 세계에서 인정되는 이름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님을, 나지막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나에게로 다가와 나의 쓸쓸함을 채워 준 ’작은 개‘는 지금 곁에 없어도, 영원히 함께할 수 없어도, 오직 나만이 부를 수 있던 그 이름을 통해 영원히 ’나의 개‘로 남을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존재감의 크기로 표현된 ‘작은 개’
제목에서 드러나듯 작가 송미경이 처음 떠올린 개는 몸집이 아주 작은 개였지만, 그림책으로 표현된 개의 크기는 작지 않습니다. 작가 김종민에게 ‘작은 개’는 영하에게 미치는 존재감의 크기로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영하와 눈높이가 맞을 정도로 개가 커다랗게 그려진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이처럼 ‘작은 개’는 이웃집 아이들이나 길에서 마주친 낯선 소년과 마주칠 때는 현실적인 크기지만, 보리에 대한 그리움이 극대화된 꿈속 장면에서는 영하를 태우고 달릴 정도로 커집니다. 또한 다시 만나서 기쁘지만 영원히 헤어질지도 모르는 순간에 나누는 포옹에서 ‘작은 개’는 영하의 주변을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랗게 그려집니다. 둘이 함께하지 못하는 순간에 존재감이 극대화되는 장면 연출은, 현실에서는 완벽하게 서로의 것이 될 수 없는 영하와 보리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그려지는 결말
작가 송미경은 영하와 보리가 영원히 이별하게 되는 결말을 그린 초고와 달리,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층의 독자들이 자신의 감정과 경험에 따라 뒷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결말을 꾸렸습니다. 이러한 글 작가의 의도는 그림 작가의 이미지 연출을 통해 섬세하게 구현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작고 연약한 세계가 가진 아름다움을 시각화한 작가 김종민은 이야기의 결말에서 ‘작고 하얀 것이 깜빡이며 달려오는 것’을 바라보는 영하의 표정을 복합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를 통해, 보리가 영하에게 돌아온 것인지, 영하의 환상 혹은 꿈속 이미지인지 독자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한 것이지요.
하지만 보리가 영하에게 돌아온 장면이 현실이든, 환상이든 변하지 않는 것은,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이 아주 특별하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이별과 상실은 고통스러운 감정이지만, 함께 나눈 시간을 어떻게 간직하느냐는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도록 손 내미는 그림책입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