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에 비춰진 죽음, 그것은 어둡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이고 자연의 흐름이다. 탄생과도 비교될 수 있는 찬란한 순간인 것이다. 이런 감각을 고은 시인은 쉬우면서도 리듬감 있는 언어로 종이 위에 담아냈다.
여기에 한병호 작가가 석판화 기법으로 시가 보여주는 시선과 의미를 펼쳐 보인다. 여린 듯 하면서도 힘있는 선은 삶의 끝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을 당당하고 생명으로 넘치도록 표현해 냈다. 또한, 세계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안선재 교수와 이상화 교수가 교차 번역하여 실었다.한국문학의 큰 기둥, 고은 시인의 생애 첫 그림책!
아이의 눈을 통해 살펴본 삶과 죽음의 의미『시튼 동물기』
차령이는 밤마다 자기 전에 책을 읽습니다. 자주 보는 책 중에 시튼 동물기가 있지요. 엄마가 왜 자꾸 보냐고 물으니 아이는 이리왕 로보의 죽음과 회색곰 와프의 죽음이 참 좋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여기에서 뜻하지 않은 감각을 발견하고 특유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아이의 눈에 비춰진 죽음, 그것은 어둡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이고 자연의 흐름입니다. 탄생과도 비교될 수 있는 찬란한 순간이지요. 이런 감각을 시인을 쉬우면서도 리듬감 있는 언어로 종이 위에 담아냈습니다.
우리나라 어린이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중 한 명인 한병호 작가가 그림 작업을 했습니다. 석판화 기법으로 시가 보여주는 시선과 의미를 담아냈습니다. 세계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안선재 교수와 이상화 교수가 교차 번역하여 실었습니다.
엄마 나는 어떤 부분이 좋냐면요,
이리왕 로보의 당당한 죽음이 좋아요.
아이들은 이야기를 참 좋아하지요. 우리 아이들의 주변에는 언제나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즐길줄 알지요. 주인공 차령이도 늘 밤마다 잠들기 전에 책을 읽습니다. 그런 책 가운데 “시튼동물기가” 있지요. 아이가 똑같은 책을 계속 읽어나가는 걸 보면 참 신기하지요. 질리지도 않고 계속 읽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차령이에게 왜 또 읽냐고 물어보지요. 아이는 이리왕 로보와 회색곰 와프가 생명의 끝에 서 있는 모습, 그 동물들의 죽음을 좋아합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아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로보가 무리를 이끌고 영웅적인 모습으로 사냥을 나서던 모습이 아니고, 와프가 자연이 준 힘과 민첩함으로 세상과 대치하며 살아가는 모습도 아닙니다. 아이는 생의 기운이 가득찬 시절을 뒤로 한 채 죽어가는 모습을 좋아하고, 즐겨 읽습니다. 시인은 이런 아이의 모습에서 뜻하지 않은 감각을 발견하고 특유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죽음의 이미지를 삶의 과정으로 승화시킨 고은 시인의 시선
로보와 와프를 통해 시인이 바라보는 죽음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직시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지요. 죽음은 삶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고 누구에게나 미지의 세계입니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렵고 멀리 내어놓고 생각하지 않으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삶의 시작을 알리는 탄생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신비스러운 일이 죽음입니다.
이리왕 로보는 특유의 날카로움과 섬세함으로 사람들이 놓은 덫을 피해가며 그 지역 최대의 맹수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얀색 털을 가진 동반자 블랑카가 사람들에게 잡히자 스스로를 위협하는 덫과 독이 있는 지역으로 들어갑니다. 죽음이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평생의 사랑을 찾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지요. 결국 로보는 덫에 걸리고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거부한 채 자유롭게 달리던 광야를 바라보며 쓰러져 갑니다.
와프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되어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갑니다. 제 어미를 앗아간 것이 사냥꾼의 총성이었고, 때문에 와프는 자연이 준 힘과 민첩함을 무기로 살아가지요. 그것만이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와프고 늙고 병들자 더 이상 젊은 날의 시절처럼 생활할 수 없고 삶의 끝에 다다랐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갑니다.
이런 감각을 시인은 “사람 보다 당당하게 죽어갔어요”, “아주 새록새록 죽어갔어요” 같은 시구로 표현합니다. 아이의 눈에 비춰진 로보와 와프의 죽음은 두렵고 어두운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 있는 자연스러운 이미지이지요.
엄마는 죽음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에게 엄마는 보편적이고, 중요한 한 마디를 말해줍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죽는 거란다.” 아이는 눈을 빛내면서 대답합니다. “나도 알아. 다 알아.” 미처 알고 있지 못했던 아이의 시선입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이 바라보는 생각의 크기를 훌쩍 뛰어넘지요.
대가 한병호 화가의 석판화!
어린이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병호 작가는 쉬운 언어로 죽음의 의미를 풀어낸 고은 시인의 작품에 탄복해 그림책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석판화 기법으로 오랜 시간 몰두하고 고민하면서 끝내 시가 가진 추상적인 의미를 풀어냈습니다. 여린 듯 하면서도 힘있는 선은 삶의 끝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을 당당하고 생명으로 넘치도록 표현해 냈지요. 한병호 작가의 고민과 사색에서 탄생한 그림은 고은 시인의 시와 어우러져 아이들의 시선과 마음을 어루만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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