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첫 장은 주인공 ‘치이’의 이웃에 이사 트럭이 도착하며 시작한다. 어수선한 이삿짐 가운데에서 치이는 한눈에 세발자전거를 찾아낸다. 긴말 없이도, 또래 친구를 사귀고 싶은 치이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치이는 그토록 기다렸던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어 담 너머를 기웃대 보지만, 실망스럽게도 이웃에 온 아이는 치이의 바람과는 달리 개구쟁이인 것 같다. 다짜고짜 자신을 놀리는 이웃집 아이와의 첫 만남에, 치이는 강아지 포치에게 이웃집 강아지와 놀지 말라며 못마땅한 마음을 내비친다. 그러나 밤사이 개들이 먼저 친해지고, 날이 밝자 치이도 어쩐지 자꾸만 개구쟁이인 그 아이를 따라 하고 싶어진다.새로운 표현으로 어린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이와사키 치히로의 도전 정신이 담긴 수작
일본 그림책을 대표하는 이름,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책 시리즈의 네 번째 권 『이웃에 온 아이』(미디어창비)가 출간되었다. 『창가의 토토』 삽화로도 널리 알려진 이와사키 치히로는 어린이의 감수성에 주목한 작품 세계로 일본 그림책의 혁신을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웃에 온 아이』는 어린이와 뗄 수 없는 주요한 테마인 ‘우정’을 그린 이야기로, 특히 작가의 주된 표현 기법이었던 수채에서 벗어나 파스텔화에 도전한 것으로도 그를 아끼는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친해지고 싶은 만큼 미워하는 마음,
서로 미워하면서도 닮아 가는 우정
작품의 첫 장은 주인공 ‘치이’의 이웃에 이사 트럭이 도착하며 시작한다. 어수선한 이삿짐 가운데에서 치이는 한눈에 세발자전거를 찾아낸다. 긴말 없이도, 또래 친구를 사귀고 싶은 치이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치이는 그토록 기다렸던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어 담 너머를 기웃대 보지만, 실망스럽게도 이웃에 온 아이는 치이의 바람과는 달리 개구쟁이인 것 같다. 다짜고짜 자신을 놀리는 이웃집 아이와의 첫 만남에, 치이는 강아지 포치에게 이웃집 강아지와 놀지 말라며 못마땅한 마음을 내비친다. 그러나 밤사이 개들이 먼저 친해지고, 날이 밝자 치이도 어쩐지 자꾸만 개구쟁이인 그 아이를 따라 하고 싶어진다.
세대를 달리하며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와사키 치히로의 강점은 관계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단지 ‘우정’의 즐거운 순간만을 그리지 않는다. 작가는 호기심뿐 아니라 질투나 미움의 감정까지도 엄연히 우정의 일부임을 긍정한다. 무균의 우정만큼 허약한 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밖에 나가 밥을 먹거나 새로 널어 둔 이불로 장난을 치는 이웃 아이를 따라 하는 치이의 일탈은, 닮고 싶어 하는 감정이야말로 호감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임을 간결하고도 명백하게 보여 준다.
표지만 보면 혼자 무릎을 끌어안고 외로워하는 것처럼 보이던 치이의 옆얼굴은,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책을 양쪽으로 펼치면 뒷표지의 친구와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장면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놀랍게도 치이가 더 이상 처음처럼 외로워 보이지 않는 마법을 경험한다.
친구를 사귀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그리다
『이웃에 온 아이』는 기법 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기도 하다. 수채를 중심으로 작업해 온 이와사키 치히로였지만, 이 책에서는 과감히 파스텔화에 도전한다. 이 시기에 이미 자신의 화풍을 완성한 그의 용기 있는 모험은 성장에 대한 강박이라기보다는 그저 즐겁고 유쾌한 놀이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일찍이 10대에 유화를 공부했던 화가로서의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과연 대가답다고 수긍하게 된다. 그의 그림 중 손에 꼽게 역동적인 동세와 천연색의 연출은 어린이의 우수 어린 속내를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기존 작품 경향과 결이 다른 이 책만의 개성과도 맞아떨어진다. 친구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한 걸음 내딛는 치이처럼, 이와사키 치히로 역시 이 책을 통해 화가로서 새로운 표현 방식과 친해지는 순수한 열정과 기쁨을 만끽하고 있음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두 번째 장면 속 담벼락에 치이가 남긴 낙서는 이 작업에서 작가 스스로가 느낀 소회를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부터 아주 친한 친구”가 된 치이와 이웃 아이가 가장 먼저 함께하는 일이 그림 그리기인 것 또한 우연은 아니다.
시대에 걸맞은 눈으로 읽어 낼 때 비로소 빛나는 고전의 가치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책 시리즈는 편집자 다케이치 야소오의 기획으로 1968년 처음 선보인 이래, 당시로서는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하며 일본 그림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 기념비적인 작품들로 아직까지도 영향력이 건재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1971년에 출간된 『이웃에 온 아이』는, 남자아이는 인형놀이를 싫어하고, 여자아이는 엄마 구두를 신고 어른 흉내를 내는 등 지금 관점으로 보기에 성인지 감수성에 아쉬운 면이 남는다. 이 작품이 지닌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퇴색하지 않도록, 함께 읽는 보호자의 적절한 조언이 필요하다. 고전은 능동적인 독서 경험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되새기게 된다. 생전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대를 앞선 고민을 하고, 일생 행동으로 실천한 이와사키 치히로라면 자신의 작품이 그렇게 끊임없이 생명력을 얻기를 바랄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을 비롯해 모두 7권으로 기획된 치히로 그림책 한국어판은 2018년 12월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펴낸 『눈 오는 날의 생일』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선보여 2020년 여름 완간을 앞두고 있다.
목차